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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인도에서는 공하고 대화해야 합니다. |
그리고 어떤 대화든지 목적이 있습니다. 또 같은 대화라도 그 대화 참가자의 목적은 각자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대화의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토론을 통해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이나 상대방을 설득시키려는 것이나 그냥 단순한 하소연이나 시간 때우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화의 목적은 대화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단순한 시간 때우기로 시작한 대화가 격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시작 목적이 시간 때우기였으니 지인들과의 대화가 그렇게 되기 쉽지요.
토론을 통해서 결론을 내려고 했던 대화가 그냥 하소연이나 시간 때우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업무 회의에서 하는 대화가 이런 형태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지요.
어쨌든 잠깐이라도 어떤 결론을 도출해 내려는 과정이 있을 수 있는데, 결론을 도출해 내려는 대화에는 증거가 있어야 하며 증거를 즉시 끌어오기 힘들 때는 논리가 있어야 합니다. 또는 "권위"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증거나 논리를 내세우기 귀찮거나 어려울 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서 상대방을 찍어 누르는 기법이지요.
증거, 논리, 권위... 단어 자체부터가 허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대화에 승리하기 위해서 증거는 거짓 증거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논리는 궤변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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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小) 카토 : 로마시대 원로원인데 토론을 이기기 위해서 장황한 궤변을 잘 썼다고 합니다. |
"권위"는 좀 미묘한 데 그 사회적 지위라는 기준이 애매한 경우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애매한 경우에는 각자가 상대방에 대해 우월의식이나 선민사상을 자기도 모르게 가지게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같은 대화에 참가한 사람 각자가 서로 자기가 위라고 생각하는 아래와 같은 상황이 있습니다.
"나 혼자 국내 일류 기업에 다니고 있다"
"내 재산이 가장 많다"
"나 혼자 유명 대학교 박사 출신이다"
3명이 한 자리에서 대화를 하고 있지만 각자가 상대방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대기업에 다니는 것이 자랑일 수는 있겠지만 자기 생각이 다 맞는 것이 아닙니다. 재산이 많은 것도 자랑일 수도 있겠지만 자기 생각이 다 맞는 것이 아닙니다. 박사도 자랑 일 수 있겠지만 생각이 다 맞는건 아니지요.
"자랑거리"가 "권위"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거기에 호응해주는 얼치기들이 하도 많다 보니 당사자들도 그걸 "권위"로 착각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도출해야 할 토론에서 논리에 밀린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권위주의자"로 돌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론을 도출해야 내야 할 토론이 승부의 세계로 변질되면서 각자가 "니들한텐 질 수 없다"가 되어 버립니다. 위와 같은 상황이면 모두 다 상대방보다 "권위"가 우위에 있는 사람이지요. 모두 다 "권위주의자"로 돌변하면 대화의 목적이 상실되어 버립니다. 대화하는 시간이 아무 의미 없어집니다.
PC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각종 커뮤니티나 SNS에서 대화하는 비중이 늘고 있습니다. 이 경우는 상대방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개나 소나 자신의 "권위"가 높다고 생각을 합니다. 정말 사소한 거라도 자신이 우위에 있는 것을 찾아내서 "권위"가 높다고 생각을 합니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면 커뮤니티 가입일이 자기가 앞서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가입한 지 얼마 안 되는데 네가 뭘 안다고 까부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결론을 도출해내야 할 토론에 "권위"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올바른 증거와 합당한 논리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말 많은 대화가 저렇게 중간에 승부의 세계로 변질되면서 목적을 상실해버립니다. "권위주의자"로 돌변한 사람들도 저렇게 애매모호한 "권위"로 상대방을 찍어누르기 힘들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엔 출처가 모호한 거짓 증거나 궤변을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대화를 변질시킨 장본인은 흔히 말하는 "정신승리"를 하게 됩니다. 정신승리는 끝까지 궤변을 들이대면서 상대를 지치게 만들어서 결국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하는 정신병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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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신의 "아Q정전" : 어느 또라이 정신승리병자의 최후를 보여주는 중국소설 |
"정신승리"는 일종의 정신병입니다. 개나 소나 다 아는 저명한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는 이런 정신병을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정의했습니다. 한글로 쓸 때는 단어만 봐도 이해하기 쉽게 "자기방어기제" 라고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병이기 때문의 정신병원으로 가서 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당사자는 알지 못하므로 치료를 못 받습니다.
친목의 성향이 있는 모임에서의 대화도 승부의 세계가 돼버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만 저 같은 경우는 도저히 참아줄 수 없는 궤변만 끝까지 승부를 보긴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과 한동안 소원해지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그래도 대부분은 그냥 넘어가 줍니다. 상대방이 "죽어도 너한텐 안 진다"의 자세로 돌변하면 져주는 척하면서 진 것도 아니고 이긴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을 만들면서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려 버리는 수법을 씁니다. 친목 모임이니 대화의 목적은 시작이 시간 때우기였을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중간에 승부의 세계로 변질되었다 하더라도 원래 목적으로 다시 이동시킵니다.
물론 제가 논리적으로 틀린 경우도 꽤 많이 있습니다.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제 논리의 허점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땐 당연히 인정을 합니다. 인정을 하는 게 진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저는 대화를 승부의 세계로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승부의 세계가 아닌데 이기고 지고가 어디 있겠습니까? 상대방만 그렇게 생각하고 저를 이겼다고 생각하겠지만요... ^^;
하지만 업무와 관련된 대화는 그래서는 안 되지요. 결론을 도출해내야 할 대화인데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승부의 세계로 대화를 변질시키고 싶어 합니다. 저는 꾸준히 원래 목적인 "결론 도출"로 대화를 다시 되돌리는 시도를 합니다. 어렸을 때는 좀 힘들었습니다. 누구나 원래 성격이란 것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정말 긴 시간 동안 노력하면서 훈련이 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수월해졌습니다.
제가 상대방보다 확실한 "권위"가 있는 데 상대방이 궤변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흔한 예로 회사에서 저보다 직급이 낮은 부하 직원과 대화를 하는 경우이며, 명확한 권위에서 제가 우위에 있지만 상대방은 나름대로 자신의 권위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자주 발생을 하는데 그 예도 들어보자면 "내가 당신보다는 경력과 직급이 아래지만 이 일에 대한 경험은 더 많다" 입니다. 어떻게 보면 영역싸움이라고 본능적으로 느껴서 그러는지도 모르겠군요. 어디에 대 놓고 이야기는 못해도 자신이 권위에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논리에서 밀리면 이겨야 겠다는 생각에 궤변을 동원하게 되지요.
저는 토론에 "권위" 따위는 사용하지 않으므로 상대방을 찍어 누르는 일은 없습니다. "니가 뭘 안다고 그래?" 이딴 개병신같은 수법은 안 씁니다. 그러다 보니 10분이면 끝날 대화가 2시간을 넘기는 적도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저의 명확히 우위에 있는 권위 덕분에 상대방이 저를 찍어 누를 수는 없으니 논리적인 대화로 끝을 봐야 합니다. 온갖 궤변이 동원되지만 하나하나 논파해 나가다 보면 몇 배의 시간이 들더라도 결국 상대방도 인정하는 합당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당연히 대화 도중에 저의 논리에서 허점이 나오면 인정하고 즉시 수정하기 때문에 "합당한 결론"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합당한 결론이 항상 올바른 정답이 되지는 못합니다만 어쨌든 대화의 목적에 부합하고 서로가 인정하면서 마무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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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논의 역설 : "시간"이란 개념을 왜곡시켜서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궤변이지요. 궤변을 논리적으로 깰 때는 최우선으로 특정 개념을 왜곡시킨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
상대방이 저보다 명확한 "권위"가 있는 경우도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겁니다. 이런 경우엔 저를 찍어 누른다면 뭐 어쩔 수 없지요. 눌려 주는 수 밖에요. 하지만 마찬가지로 이런 경우의 대화도 결론을 도출해내야 하는 것이 목적으로 시작된 대화입니다.
"니가 뭘 안다고 그래?" 라고 나오면 "네. 모릅니다" 라고 져줍니다. 권위를 내세워서 이기겠다고 하니 져 줘야지요. 그렇지만 대화의 목적을 이뤄야 하니 "제가 모르는 건 모르는 거고 이 문제는 결론을 내야 하니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합니다.
대화를 승부의 세계로 변질시킨 당사자는 당황합니다. 목적을 어이없게 이뤘거든요. 결론을 도출하는 게 아닌 상대방을 이기는 것으로 변질을 시켰는데 그냥 가볍게 이겼으니 목적이 이뤄졌고 갑자기 공허해지면서 가야 할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합니다.
여기까지 진행되면 다양하게 마무리가 되지만 크게 분류하자면 두 가지 형태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좀 더 생각을 해보자"며 토론이 종료됩니다. 자신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겠지요. 논리에 밀리다 보니 지기는 싫어서 승부의 세계로 변질을 시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고 이겨버렸으니 즉시 대항하는 논리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시간이 매우 부족합니다. 그래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토론을 종료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토론때는 합당한 논리를 만들어 오거나 아니면 적당히 슬쩍 빠져 나갑니다. 승부의 세계로 변질 시키는 이유가 상대방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그러다 보니 합당한 논리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경우에 적당히 자신은 빠져 나갑니다. 어쨌든 이 경우엔 쓸모 없는 사람이 빠져나가거나 딴지를 걸지 않으니 목적을 이루기가 수월해집니다.
나머지 한 경우는 그냥 개같은 결론을 내 버립니다. 최악처럼 보이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 최악으로 보이는 일이 실제 현업에서 정말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그대로 진행할 경우엔 일이 망가집니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당사자도 문제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죽어도 절대 질 수는 없으니 되돌리지 않습니다. 프로젝트가 망해도, 회사가 망해도 자기가 망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전엔 같은 조직에서 제가 직급이 아래인 경우에 이런 일이 많았거나 몸담고 있는 회사의 거래처와의 토론에서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을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에 돈만 받으면 되니까 상관없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상대 회사가 망하면 지속적인 매출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안 망하더라도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우리 회사의 커리어에도 문제가 있겠군요.
월급쟁이 때 제가 쓰던 대응책은 이럴 경우엔 일단 결론이 나오고 일이 진행되더라도 꾸준히 문제점을 인식시킵니다. 선동할 때 쓰는 기법도 씁니다. "이대로 가게 되면 치명적인 문제가 있고 당신이 그 책임을 다 뒤집어씁니다" 라는 의미가 내포된 다양한 예와 논리를 적당히 들이댑니다. 과하면 안 하느니만도 못하니 수시로 관찰하다가 적절할 때 급소를 찌릅니다. 급소를 찔렸으니 상대방은 잠이 안 왔을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스리슬쩍 방향을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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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을 써서 죄송합니다... |
어쨌든 이렇게 상대방의 심리를 뒤흔들어서 결국 개같은 방안이 진행되는 것은 막아 낸 경우가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막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급소를 찔렸는데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진행한 프로젝트는 모두 망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리고 당사자는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주변의 누구도 모릅니다. 인성 자체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중과부적으로 안 좋은 결과로 진행된 것이 몇 번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올바르게 진행된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이런 경우들을 겪게 되겠지만 그간의 경험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저의 대처법이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또 다른 해법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목적은 변하지 않습니다. 업무에 있어서 결론을 도출해내야 하는 대화는 중간에 엉뚱하게 변질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세련된 방법으로 원래 목적에 충실하도록 유도하여 올바른 결론을 도출해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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