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실무"란 단어가 모호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월급쟁이들은 다 일을 하고 그 일을 "실무"라고 하니까요.
하지만 현실을 봤을 때 일을 한다는 개념부터가 모호합니다. 노동 집약적인 업종은 그나마 모호성이 덜 합니다. 일하는 사람이 잘하든 못하든 움직이면서 뭔가를 하면 일을 하고 있다고 누구나 생각할 겁니다. 물론 계속 움직이면서 회사 일이 아닌 다른 것을 할 수도 있겠지만 오랜 세월 동안 그런 문제에 대한 대비책이 세워져 있으므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규모가 큰 회사면 관리 시스템으로 파악이 되겠고 작은 회사는 구성원이 적기 때문에 상급자의 눈치로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생산라인의 결과물 상태를 즉시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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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인하는 데 1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
이 문제는 기술 집약적인 성격이 강한 업종일수록 모호해지기 시작합니다. 몸을 쓰는 게 아니고 머리를 쓰는 일이다 보니 눈으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눈으로 파악하는 방법은 자리에 잘 앉아 있느냐 밖에는 없습니다.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과 일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상관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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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초 클로킹 디바이스 : 발 근처에 놓았다가 상사가 등장할 때 밟아주면 일하는 화면으로 전환되는 스위치. 어깨의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권투선수나 야구 타자 출신의 상사도 농땡이를 눈치챌 방법이 없습니다. |
결과물 확인도 어렵습니다.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연구와 관련된 업종은 결과물이 나오는 데 5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과물이 나와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결과물을 봐도 이게 제대로 나온건지 관리자나 결정권자들이 파악이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관리자나 결정권자들이 모든 기술을 알 수는 없으니까요. 알아도 5년이나 걸린 일을 세부적으로 검증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기술집약적이라는 수사가 붙습니다.
또 상황에 따라 결과물의 조작질도 합니다. 검수하는 사람들이 기술을 모르는 허점을 이용해서 보이는 부분만, 또는 검수하는 항목만 가짜로 처리하여 그 순간만 모면하려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일종의 사기 행위입니다.
소프트웨어 업종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집약적인 개발은 위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판단이 쉽습니다만 기술집약적인 개발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2017년에도 기술집약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은 여전히 경영학적인 측면에서 체계가 전혀 잡혀 있지 않습니다. 그냥 각 기업의 실장 또는 팀장급들이 다들 지맘대로 하면서 지들한테만 해당되는 상황을 모든 회사가 따라 해야 할 진리인냥 자뻑을 날리거나 자신이 대단한 줄 알고 뭔가를 했다가 대실망을 한 후 실패담을 퍼뜨리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밖에 안 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실무 지향적 개발자"란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해서 횡설수설을 아주 길게도 했군요. 이 잡설의 향연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저도 모르겠네요.
어쨌던 다른 사람이 눈으로 바로 파악하는 것이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려야 결과물이 나오는 일의 성격상 일하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성향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일의 데드라인이 몇 개월에서 몇 년이나 되는데 아무리 중간 중간에 상황체크를 한다 하더라도 완성된 결과물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요리조리 빠져나갈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주어지고 감시자가 일의 세부 사항을 볼 수 없다보니 각자가 자신의 취향대로 일을 합니다.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혹시나 나중에 발생할 곤란한 상황은 지금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목숨 건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멀리까지 생각하는 사람 별로 없겠지만, 혹시 안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직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대응책이 심연 깊은 곳에 있겠습니다. 일은 뒷전이고 인간관계와 스펙쌓기에만 치중하는 사람들은 이런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서 그렇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쯤 되면 이 글의 주제인 "실무 지향"과 "일"은 전혀 별개의 것이 되겠군요. 많은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의 결과물이 망해도 일은 하는 것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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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려 7년을 개발했지만 중단된 소프트웨어 |
제가 말하는 "실무 지향적인 성향"은 일의 관심이 결과물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공부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화면에 "Hello World"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1978년에 C언어를 만든 사람들이 쓴 책에 나오는 첫번째 예제다보니 이게 진리로 굳어져서 C언어 말고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혀 다른 언어 교재들까지 첫 예제로 사용한다는 말이 있는데 진실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안 듭니다. 제가 혹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교재를 쓴다면 개나 소나 차용하는 저런 건 절대 안 쓸 겁니다. 저라면 "I am the King"을 보여주는 것으로 하고 싶네요. 물론 그럴 일은 안 생길 테니 내일부터 까먹을 것 같습니다.
저 "Hello World"를 화면에 보여주는 코드는 너무도 단순합니다. 개발 언어에 따라 다르지만 한 줄 또는 길어봐야 5줄이 넘지 않습니다.
교재에 나오는 것은 그렇고요. 실제로 어떤 언어든 "Hello World" 같은 한 문장을 화면에 보여주는 방법은 수십 가지가 넘습니다. 시각적으로 간단한 방법이 1~5줄일 뿐입니다. 그런 규제를 벗어나면 10줄이 넘을 수도 있습니다. 수십 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효율적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정석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흔히 말하는 "똘끼"가 넘치는 사람은 일부러라도 엉뚱한 비효율적 방법을 씁니다. 또 짧은 코드가 항상 효율적이지도 않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교재의 제일 처음에 나오는 단순한 것도 이런식으로 생각할 것이 많습니다. 실제 개발은 "Hello World" 출력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게 복잡한 것들이 끝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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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본 중에 기본적인 것이 확장되는 도중에 인수인계받은 사람은 지옥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
그런데 우리의 "실무 지향적 개발자"는 복잡한 고민이 필요없습니다. 오로지 결과만 나오면 어떤 방법을 쓰던 상관없습니다. 고민을 안 하니 자신이 즐겨쓰던 방법이나 모르는 부분은 그냥 어디서 보이는 간결한 코드를 그대로 쓰면 됩니다. 더 생각할 가치도 없습니다. 자신이 쓰는 코드에 어떤 철학이나 과정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잘 돌아가면 됩니다. 할 일이 쌓여있는데 그냥 잘 돌아가면 되는거지 사소한 것에 고민할 정신이 없습니다.
관리자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에게 일 시키기가 편합니다. 결과물이 상대적으로 빨리 나오니까요. 알아듣지 못할 복잡한 이론을 내세우면서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져나가려고 수 쓰는 일도 적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발 조직안의 여러 사람중에 "실무 지향적 성향"이 강한 사람에게 일이 몰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관리자의 "관리 능력"이 떨어지거나 관리자가 "관리"에 관심이 덜한 조직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관리자 직책에 있는 사람이 모두 다 관리 잘 하는 거 아니니까요. 또는 관리자 직책에 있는 사람이 관리 외의 업무도 많이 하느라 정작 "관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실무 지향적 개발자"는 그렇게 일이 몰리다 보니 매일같이 새로 등장하는 이론에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습니다.
소프트웨어 결과물은 항상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실무 지향적 개발자"는 결과물에 중점을 둔 성격이므로 그 결과물에 발생하는 문제도 당연히 디버깅 및 유지보수에 최선을 다 합니다.
자기가 만들거나 설계해 놓고 디버깅이 싫거나 디버깅할 능력이 안 돼서 쏙 빠져나가는 다른 사람의 일까지 떠맡는 경우가 상상을 초월하게 많습니다. "좋은 관리"에 관심 없는 관리자는 이런 병폐를 해결할 생각을 안 하고 답이 빨리 나오는 "실무 지향적 개발자"가 해결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야 자기가 편하니까요.
병폐가 쌓이고 있습니다. 2017년 현재 유행하는 용어로 "적폐"청산이 안 되고 있습니다. 에이스에게 끝도 없이 일이 몰립니다. 끈기 있는 에이스는 몇 년씩 버티기는 합니다. 비교적 빠른 시간에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성실하게 디버깅 및 유지보수도 하고, 똥 싸놓고 도망치거나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다른 사람의 결과물이라고 하기도 힘든 똥도 성실하게 고치든지 다시 만들든지 해서 결과물을 내놓고 다시 또 디버깅하고 유지보수를 하고....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다 보니 오늘 아침에도 새로 등장하는 이론이나 기술에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만 실무에 적용하기엔 위험부담이 큽니다. 안 해본 것이다 보니 적용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반드시 찾아오는 시행착오도 익숙한 기술보다 훨씬 심각한 경우도 많습니다. 결과물을 비교적 빨리 내는 성향이다 보니 관리자뿐만 아니고 개나 소나 요구하는 일도 많아서 그런 일 처리하기에도 벅찹니다.
그리고 개고생을 해서 새 기술을 적용하고, 새 기술이다 보니 도움받을 곳도 없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디버깅과 유지보수를 성실하게 했지만, 어제만 해도 지상 최고의 완벽한 것처럼 여러 매체와 어중이 떠중이들이 떠들어대던 기술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관심에서 멀어지고 사장되면서 그동안 열과 성을 다해서 했던 일이 신기루 같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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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의 오아시스 신기루는 잘못 쫓아가다가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데 오늘 아침에 또 새 기술이 나왔습니다. 또 여기저기서 호들갑 떨고 자빠졌습니다. 분위기만 봐서는 이 기술 또는 이론이 은하계를 정복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에 익숙한 "실무 지향적 개발자"는 심드렁합니다.
이름만 개발자 출신이지, 결과물도 못 내놓는 인간들이 또 사기를 친다고 생각합니다. 개발도 모르는 주둥아리만 나불대는 컬럼니스트, 에반젤리스트, 기자들이 어디서 먹잇감을 발견하고 하이에나처럼 떼거지로 달려들어서 핥아대면서 무슨 맛인지도 모르면서 맛있다는 찬양질을 조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볍게 무시하고 오늘도 디버깅 및 유지보수, 그리고 개나 소나 요청하는 잡일에 시달립니다.
이런 정황을 깊게 생각해보면 우리의 "실무 지향적 개발자"는 "일"은 잘 합니다. 그리고 그 것 뿐입니다. 타인이 보기에 "실무 지향적 개발자"가 하는 "일"은 그냥 순수하게 코딩하고 결과물을 뽑아내는 것일 뿐입니다. 코딩해서 결과물만 잘 뽑아내지 그 외의 것들은 관심 없는 편협한 사람으로 보이게 됩니다.
"일을 잘한다"란 것은 임원을 포함한 조직 구성원 각자가 모두 다 다른 정의를 머릿속에 내리고 있습니다. 타인과 커뮤니케이션만 잘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며, 설계만 잘 하면 코딩은 지나가는 개한테 시켜도 결과물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신기술은 무조건 알아야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것에 관심이 없다면 보수적이고 도태되기 딱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나열하면 끝도 없습니다. 심지어 아부를 잘하면 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무 지향적 개발자"도 위에 나열한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아부도 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쳐서 보여준 모습 때문에, 즉 코딩해서 결과물만 잘 뽑아내지 그 외의 것들은 관심 없어 보이는 모습 또는 은하계를 정복할 것처럼 여기저기서 떠들어대는 신기술에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행태가 타인에게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회를 얻기가 힘듭니다. 코딩해서 결과물만 뽑아내는 것 외의 기회를 얻기가 힘듭니다. 인식이란 것은 무서운 것이니까요.
이직해서 관리자로 전향한 후 관리자 일을 아주 잘 해내도 이전 직장의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의 기억엔 그냥 코딩 잘하는 개미 같은 일꾼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나 이제는 관리도 잘한다"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믿어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본 것만 기억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는 성장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남도 성장했을 거라는 것을 상상도 못 합니다. 또는 시기 질투심에 인정을 안 합니다.
타인에 대해서 자신이 본 것 외에 내재한 잠재능력이나 성장 가능성을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혹시 그런 능력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타인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정확히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능력으로 이미 성공해서 저 높은 곳에서 놀고 있기 때문에 만날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나 과거에 당신이 보던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 사람은 타인의 성장 가능성 따위는 관심도 없고 과거에 자신이 본 잠깐의 것만 믿고 판단하는 그저 그런 사람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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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재력을 볼 수 있는 기계지만 샤이어인 잠재력은 못 봅니다. |
이 지경이 돼버린 원인은 "실무 지향적 개발자"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발전 가능성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많은 사람은 장기간 해온 행동 양식과 관념이 바뀌는 경우는 드문 편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코딩해서 결과물만 잘 뽑아내는 것 외에는 발전이 없을 확률이 높습니다. 다른 것도 잘 할 수 있다고 해도 타인이 안 믿어주는 것이 보편적인 관점으로 보면 틀리지 않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하도록 지금 당장 시도를 해야 합니다. 어렵겠지만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익숙하게 쓰고 좋아하고, 다른 모든 기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도 한때는 새 기술로 등장했었습니다. 당시엔 다른 사람이 다른 기술을 똑같이 생각하고 고집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간 도태되는 기술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에 등장한 새 기술이나 이론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새 기술이나 이론은 매일 나옵니다. 모든 것을 다 관심을 가지고 습득하고 실무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아침에 나온 기술이나 이론이 내일 아침에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유용하게 쓰이리라는 것을 판단하는 능력도 키워야 합니다. 처음엔 어렵겠지만 그동안 나타나서 오래 가는 기술과 금방 관심에서 벗어나는 기술이나 이론의 세부적인 면을 분석해보는 노력을 하다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됩니다.
새 기술이나 이론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너무 과하지 않게 글이나 말로 타인에게 알리는 행위도 해야 합니다. 그런 어필 없이 자신의 머릿속에만 장롱 안에 있는 황금 돼지처럼 아무도 모르게 고이 간직해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자신이 노력해서 습득한 지식을 사기꾼 떠버리 취급은 받지 않도록 과하지 않게 적당하게 포장하는 행위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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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하는 능력도 고급진 기술중 하나입니다. |
사기꾼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제가 적당히 사기 치는 효과적인 방법을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있습니다. 편의상 A와 B라고 하겠습니다. A는 현업 개발자고 B는 현업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된 관리자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새 기술이 나왔습니다. 당연히 A와 B는 둘 다 아직 그 내용을 모릅니다.
저 때문에 오늘부터 신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개발자 A는 내용을 읽어보지만, 그 방대한 내용에 질려버립니다. 전체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매우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만 출근해서 만나게 될 관리자 B에게 "나는 위대한 개발자다"라고 사기를 치고 싶습니다.
관리자 B를 1년 정도 지켜봤더니 이제 기술습득엔 관심이 없고 관리만 잘 하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날카롭고 깐깐한 성격도 아닙니다.
개발자 A는 아침에 읽었지만, 정확히 파악은 안 되는 신기술에서 뭔가 익숙한 듯하지만 모호하고 매력적인 단어를 추려냅니다. 실제하고 상관없는 지맘대로 자의적 결론을 내도 됩니다. 그럴싸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출근 후에 적절한 미사여구로 그 단어들을 연결하면서 안 날카롭고 안 깐깐한 관리자 B에게 썰을 풉니다. A는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B는 "개발자"가 새 개발기술을 이야기하는데 뭔가 알 듯하면서 그럴싸하지만 이해하는 데 에너지를 쓰기 싫은 소리를 하니 그냥 속 편하게 믿어버립니다. A의 "개발자"라는 현재의 위치가 "권위"가 되는 순간입니다.
이로써 A와 B, 둘 다 모르는 사실을 A가 "개발자"라는 권위를 이용해서 잘 아는 것처럼 포장질을 해서 사기 치기에 성공했습니다.
이 방법은 신문에서 기자들이 자주 써먹는 사기 기법입니다. 기사에서 아래 같은 문구를 자주 접할 겁니다.
"오늘 주식이 개폭락을 한 이유를 유명 애널리스트에게 문의한 결과 세계 경기가 카타르시스에서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으로 진단했다"
"게임 전문가 A씨는 저 게임이 망한 이유를 개발자가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거울을 보고 코딩했기 때문인것 같다고 진단했다"
"연예계 소식통에 따르면 연애인 Y양과 Z군이 열애에 빠진 것으로 지인들이 밝혔으며 둘은 어젯밤 으슥한 곳에서 비밀스럽게 가위바위보 게임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널리스트가 누구고 게임 전문가가 누구고 소식통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게 뭡니까? 이 기자들은 권위를 이중으로 이용해서 개사기를 치고 있습니다. 본인은 이미 "기자"라는 권위가 있습니다. 제가 글을 쓰면 안 믿는 사람이 많겠지만 "기자"는 그냥 기사를 써도 그대로 믿는 순진한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안 믿는 덜 순진한 사람들도 속이기 위해 어디서 팔아먹은지 모르는 가짜 "애널리스트", "게임전문가", "소식통"이라는 권위를 또 더해서 결국 덜 순진한 사람들도 속게 만듭니다.
진실은, 내일 아침에 내보낼 기사를 써야 편집장한테 쪼인트를 안 까이고 이번 달에도 월급을 받을 수 있는데 왜 주식이 개폭락 했는지, 왜 게임이 망했는지, 왜 Y양과 Z군이 비밀스럽게 만나서 뭘 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술 약속이 있어서 어서 빨리 나가봐야 합니다. 에라 모르겠다 사기나 쳐야지 하면서 저런 범죄를 저지릅니다. 하지만 믿어 주는 사람이 더럽게 많으므로 아무 문제 없습니다. 내일은 썸녀 또는 썸남하고 만나서 밀당짓을 해야 하니 또 사기 치면 됩니다. 많은 사람이 또 속아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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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위가 땅에 떨어졌군요. 자업자득입니다. |
기술한 대로 이 고급지면서 엔틱한 사기 기법은 제가 고안한 것이 아니고 신문기사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것입니다.
개발자 A는 일단 사기를 치기는 했지만,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사기 친 것을 안 들키려면 실제로 그 기술을 습득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든지, 이직해서 B와 장기간 마주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기 친 게 안 들키면 B의 인식엔 A는 결과물도 잘 뽑아내고 아는 것도 많아서 뭐든지 잘 할 것 같은 유능한 미래지향적인 개발자로 남게 됩니다.
"언제나 근면 성실한 내가 저따구로 사기까지 쳐 가면서 살아야 하냐?"
라고 말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겠군요. 사장될지도 모르는 신기술 따위를 머리 아프게 익히고 싶지도 않겠습니다. 저런 속임수 개사기 따위는 치지 않고 평생 남이 시키는 개발만 조용히 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겁니다. 나쁘지 않은 생각입니다. 틀리지 않은 생각입니다.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다만 삶은 자기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불의의 상황이 발생하여 현 직장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백수로 내동댕이쳐졌을 때 코딩해서 결과물만 잘 뽑아내지, 그 외의 것들은 관심 없는 편협한 사람, 즉 제가 여태까지 횡설수설한 "실무 지향적 개발자"와 결과물도 잘 만들지만 다양한 지식도 많은 것처럼 보이고 다른 일도 잘 할 것처럼 보이는 개발자는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기왕 하는 일인데 좀 더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해도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지식을 습득하고 적당히 포장질도 하고 해도 평생 남이 시키는 개발만 하고 살 수 있습니다.
경영자나 관리자 측면에서 보면 구성원 중에 이런 개발자의 비중이 높아야 회사가 잘 돌아갑니다. 하지만 이런 개발자가 절대다수라면 생각지 못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당장은 회사가 잘 돌아가지만, 항상 그 수준을 넘지 못합니다.
자기 회사의 주력기술이 시장의 관심에 멀어지고 있는데 그것을 인지도 못 하고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에 만족하고 살고 있다가 경쟁사가 내일 저녁에 갑자기 신기술을 들고나와 화려한 감언이설로 고객을 뺏어갑니다. 또 신기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경쟁사가 자기 회사제품보다 압도적으로 성능이 향상된 것이나 시장의 다양한 요구사항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대응할 수 있는 서비스를 들고 나왔는데 무슨 방법을 썼는지 파악할 길이 없습니다. 결국, 또 뺏깁니다.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 하고 저런 꼴을 알게 모르게 당하면서 결국 사람들도 하나 둘 씩 나가게 되고 진짜로 간신히 연명하거나 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월급을 받는다는 것,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애들 장난이 아닙니다. 학교 다니면서 이성과 썸타는 놀이하면서 졸업이나 기다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세렝게티 평원에서 사자를 피해 다니면서 살아가는 생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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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귀여워 보입니다만... |
어떤 자세로 일할 것인가,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자신의 몫이며 책임도 자신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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